-환경오염이 덜하고 구동비용 또한 저렴한 히트펌프, 넷-제로 달성을 위한 대안으로 각광

-영세한 시장 규모와 높은 가격으로 부진한 히트펌프 시장

-향후 영국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기존 좀비보일러 대체 가능

히트펌프는 냉매의 발열 혹은 응축열을 이용해 저온의 열원을 고온으로, 반대로 고온에서 저온으로 전달하는 냉난방 겸용 장치다. 히트펌프 원리는 에어컨 원리와 비슷한데, 에어컨이 실외기를 통해 열을 배출했다면, 히트펌프는 그 열을 난방으로 다시 활용한다는 점에서 다르다. 또한 열원이 어디인지에 따라 공기열원, 지열원, 수열원 히트펌프로 구분된다. 이처럼 히트펌프는 공기, 지반 등 신재생에너지원으로 작동되기 때문에 일반 화석연료(유류, 가스) 보일러보다 환경오염이 덜하다.

히트펌프는 에너지 효율 및 비용 면에서도 화석연료 보일러를 압도한다. 화석연료 보일러가 1㎾h당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이 0.2㎏CO2eq/㎾h를 웃도는 데 반해 공기열원 히트펌프는 0.08㎏CO2eq/㎾h, 지열원 히트펌프가 0.07㎏CO2eq/㎾h를 발생시킨다. 기술의 발전과 함께 2050년 히트펌프가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은 0.01㎏CO2eq/㎾h까지 줄어들 전망이다. 또한 전기 히터를 히트펌프로 교체하면 연 3000㎾h의 전기를 절약할 수 있어 그만큼 비용이 저렴해지는 효과가 있으며, 이는 2022년 기준 약 250만 원 정도다. 단, 2022년은 세계에너지 위기로 에너지 가격이 2배 이상 치솟아 올라 1㎾h당 전기요금이 51.1p(한화 약 870원)를 기록했다.

 

보일러 종류별 탄소 배출량 (자료: 히트펌프협회(HPA) )
보일러 종류별 탄소 배출량 (자료: 히트펌프협회(HPA) )

영국 대부분의 산업 보고서에 ‘넷-제로’, ‘그린’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을 정도로 탄소배출량 감축은 영국 산업 전반을 가로지르는 목표다. 계획에 따르면, 영국은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을 ‘0’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이를 달성하기 위한 가장 시급한 일 중 하나가 바로 화석연료 보일러 감축이다.

영국에서 배출되는 전체 탄소 배출량의 21%가 난방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에 2021년 영국 정부는 ‘난방 및 건축물 전략(Heat and Building Strategy)’을 통해 영국 내 모든 건물을 넷-제로로 만들기 위한 두 단계 전략을 발표했다.

그 첫 단계는 새로 지어지는 건물에 한해 적용되기 때문에 이미 가정에서 가스 혹은 유류 보일러를 사용하고 있다면 2025년 이후에도 보일러를 수리해야 하거나 교체할 때 히트펌프 등 저탄소 보일러로 교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2035년부터는 보일러 교체 시 반드시 저탄소 보일러로 교체해야 한다.

이 정책으로 인해 2025년 이후 완공되는 건설 프로젝트에 히트펌프가 대거 설치될 예정이다. 현재 런던 외곽 지역 대규모 주택단지 공사가 한창이며, 앞으로 더 많은 아파트가 세워질 것을 감안하면 히트펌프 시장이 계속해서 커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정부의 바람과 달리 히트펌프가 제대로 안착되기 위해서는 해결돼야 할 과제가 많다. 가정용 공기열원 히트펌프의 경우 설치비용이 일반 가스보일러의 4~5배에 이르고 별도 장치 또한 필요해 설치 면적도 많이 차지한다. 

 

 

히트펌프협회 설문 : 기업에 고용된 기술자는 몇 명입니까? / 자료: 히트펌프협회(HPA)
히트펌프협회 설문 : 기업에 고용된 기술자는 몇 명입니까? / 자료: 히트펌프협회(HPA)

설령 소비자들이 모든 불편을 감수하고 히트펌프로 교체한다고 해도 영국에는 히트펌프를 설치할 사람이 없는 실정이다.

2021년 히트펌프협회 설문 결과, 히트펌프 기술자를 26명 이상 보유하고 있는 기업은 전체의 5%도 채 되지 않았다. 히트펌프 가격 경쟁력이 낮은 현 상황에서 정부 지원 없이는 기업이 성장하기 어려운데, 정부가 히트펌프에 대한 지원을 계속해서 이어 나갈지 명확하지 않아 기업들이 히트펌프 사업에 전적으로 뛰어들지 못하는 것이다. 기업 규모와 투자가 정체되니 연쇄적으로 기술 개발과 규모의 경제 또한 더뎌지고 있다.

영국 씽크탱크 국립과학기술예술재단(NESTA)은 2022년 발간한 보고서에서 현재 영국의 숙련된 히트펌프 엔지니어는 3000여 명에 불과하며, 향후 6년간 2만7000명까지 그 수가 늘어나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엔지니어 수를 늘리기란 쉽지 않다. 신규 엔지니어 유입은 계속해서 줄고 있고 영국 내 가스보일러 엔지니어의 82%가 이미 만 41세 이상이다. 히트펌프만을 전문적으로 다루기보다 가스보일러 엔지니어가 히트펌프 엔지니어 자격증까지 따서 활동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엔지니어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히트펌프 엔지니어를 2만7000명까지 늘리려면 정부의 확실한 보상제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 신기술이 계속해서 시장에 등장하는데 반해 아직까지도 영국에서는 구식 기술이 교육되고 있다. 종합적으로, 넷-제로 목표의 안정적인 달성을 위해서는 히트펌프 업계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신식 기술 교육을 통한 업스킬링이 필수적이다.

영국정부 지원정책

이론상 2030년까지 330만 대의 히트펌프가 설치돼야 넷-제로를 달성할 수 있다. 목표를 달성하는 동시에 에너지 요금을 감당하지 못하는 국민들을 구제하기 위해 정부도 발벗고 나서 히트펌프 보급에 힘쓰고 있다. 다행히 정부의 보조금, 지원제도 등을 통해 히트펌프 보급률이 조금씩 증가하고 있지만, 2030년까지 330만 대, 2050년까지 1900만 대의 히트펌프가 설치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현재 정부의 지원책은 아래와 같다.

보일러 교체 보조금 지원 제도(Boiler Upgrade Scheme)

영국 정부는 2022년 4월부터 보일러 교체 보조금 지원 제도를 도입했다. 이 제도는 화석연료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2021년 정부에서 발표한 ‘난방 및 건축물 전략(Heat and buildings strategy)’의 일환으로 화석연료로 작동되는 냉난방 시스템을 히트펌프 혹은 바이오매스 보일러로 교체하는 경우 정부에서 보조금을 지원해주며, 2022년부터 2025년까지 3년간 총 4억5000만 파운드(한화 약 7000억 원)의 예산이 투입될 예정이다. 지원 가능 금액은 종류에 따라 다른데, 공기열원 히트펌프나 바이오매스 보일러인 경우 5000파운드(한화 약 8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으며, 지열원 히트펌프인 경우 6000파운드(한화 약 900만 원)까지 지원받을 수 있다.

보조금 지원제도를 통해 정부는 2030년까지 저탄소 보일러 설치비용이 일반 보일러 설치비용과 비슷해지도록 하고 궁극적으로 2035년부터는 저탄소 보일러 설치비용이 일반 보일러보다 낮아져 소비자에게 더 매력적인 선택이 되도록 유도할 예정이다.

영국 최대 에너지회사인 E.ON UK의 최고 책임자 Michael Lewis는 "대규모 수요가 생기면 기술 발전과 규모의 경제는 자연히 생긴다"라며 "정부의 지원이 탄탄하다면 다가오는 미래에 히트펌프 가격을 절반 이상 줄일 수 있다"라고 밝혔다.

히트펌프 레디 프로그램(Heat Pump Ready Programme)

히트펌프 레디 프로그램은 2020년대와 2030년대에 걸쳐 청정에너지 기술을 상용화하기 위한 대규모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2022년 봄에 시작됐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연구지원(최대 3000만 파운드, 한화 약 465억 원) △개발지원(기술 및 도구 개발에 최대 2500만 파운드, 한화 약 387억 원) △교육지원(교육 및 협력사업에 최대 500만 파운드, 한화 약 77억 원) 총 3가지 지원을 제공한다.

에너지 효율 제품 구매 시 설치 부가세(VAT) 면제제도

정부는 2022년부터 2027년 3월까지 5년간 히트펌프, 태양광 패널과 같이 에너지효율이 높은 제품을 구매하는 경우 설치 부가세를 면제해주고 있다. 영국의 부가세는 통상 20%인데, 이를 면제해주기 때문에 국민 스스로가 오래된 가스, 전기보일러를 교체하도록 유도한다.

이외에도 히트펌프 산업을 간접적으로 성장시킬 수 있는 정부 지원으로 난방 시스템 및 건축물의 탈탄소화 지원 정책이 있다. 해당 정책은 공공부문 탈탄소화 계획(14억 파운드), 사회 주택 탈탄소화 기금(8억 파운드), Heat Network Transformation Program(3억4000만 파운드) 등을 포함한다.

 

시장 및 경쟁 동향

영국 보일러 시장에서 한국은 11위 수입국으로 꾸준한 수출을 이어가고 있으나 히트펌프 시장에서 한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0.01% 정도로 그 비중이 미미하다.

지열원 히트펌프의 경우 대지에서 열을 가져와야 하기 때문에 파이프를 매설할 수 있는 넓은 땅이 필요하다. 따라서 지열원 히트펌프는 농업용 등으로 많이 사용된다. 수열원 히트펌프 역시 집 근처에 강이나 바다가 있어야 설치가 가능하기 때문에 제약사항이 많다. 그 때문에 가정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히트펌프는 공기열원 히트펌프다. 소비자들에게 친숙한 공기열원 히트펌프 제조사로는 LG, 삼성, 미쓰비시, 다이킨, NIBE 등이 있다.

현재 영국 보일러 시장에 진출한 국내 기업은 최근 북미 시장에서 큰 성과를 보이고 있는 경동나비엔이다.

경동나비엔 관계자에 따르면, 영국의 넷-제로 정책에 부합해 시장 지속성을 확보하기 위해 히트펌프 및 수소 보일러 출시를 검토 중이며, 개별 가정을 타깃하기보다 대규모 건설 프로젝트 납품에 주력할 예정이다. 아직까지는 가격 및 환경 면에서 개별 가정이 히트펌프를 소화하기 어렵다는 의견이다.

히트펌프 시장 진출방안 및 전망

영국은 보일러 시장 규모로 세계 2위 시장이며 이미 유럽의 메이저 업체들이 대거 진출해 있어 어느 나라보다 시장 진입장벽이 높다. 더해 영국은 보수적인 성향으로 인해 신규 브랜드에 대한 경계심이 많다. 따라서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입하기 전 사회공헌 마케팅 등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서서히 넓혀가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지금 10년이 앞으로 인류의 1만 년을 결정할 것이다.‘ 영국 정부의 전 수석과학고문이었던 Sir David King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세계 정상들이 모여 2050년을 탄소중립의 해로 지정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여러 면에서 현재는 인류의 미래를 결정하는 갈림길이다. 지금은 여름이 조금 더 덥고 겨울이 조금 더 추운 것뿐이지만, 안일하게 현재를 흘려보내다간 불타는 여름, 얼어붙은 겨울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

히트펌프 역시 완벽한 대안은 아니다. 위에 언급된 설치, 수리 비용 문제뿐만 아니라 가정에서 주로 사용되는 공기 열원 히트펌프의 경우 외부 온도가 일정 수준 이하로 떨어지면 성능이 저하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런 문제들을 안고 있음에도 정부가 계속해서 히트펌프 설치를 강조하는 것은 완벽한 대안을 찾을 때까지 기다리기엔 2035년이 빠른 속도로 다가오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출처 : KOTRA 영국 런던무역관 남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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